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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비명(조국의 현실이 이래서야---?)


대한민국의 비명

[중앙일보] 2012.03.05 

해마다 5월이 오면 한국 사회는 광주의 비명을 들었다.

광주의 통곡은 함성과 총성 그리고 장송곡이 어우러진 시대의 격통이었다.

5월이 오면 기억은 핏빛으로 물들고 비명은 라디오 볼륨처럼 커졌다.

그러길 30여 년, 이제 광주는 역사의 각인(刻印)으로 남았고

비명은 민주주의 교향곡이 되었다.  

해마다 3월이 오면 나는 천안함의 비명을 듣는다. 평화로웠던 3월 26일 밤,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46인이 사라져갔다. 역사의 심술인가. 

100년 전 그날은 안중근 의사가 처형당한 날이었다.

민족의 의인(義人)을 기려야 하는 그날, 북한은 패륜적 테러로

남한의 젊은이들을 죽인 것이다.  

천안함 2년에 맞춰 나는 책을 냈다. 이명박 정권 4년 동안 썼던

칼럼을 정리한 것이다. 지난 자료를 뒤지니 사회를 뒤집어놓았던

인물과 사건이 3D처럼 튀어나왔다. 

역시 가장 비극적인 것은 천안함과 연평도다. 부서진 천안함의

선실에서 수병(水兵)들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책 제목도 『대한민국의 비명』이라고 지었다.  

천안함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충격적인 남북관계 사건이다.

평상시에 군함이 영해 내에서 폭침된 건 세계사에서 유례가 드물다.
북한의 도발뿐 아니라 남한의 방황에서도 사건은 충격적이다. 

1983년 아웅산 테러나 87년 대한항공 폭파 때 남한은 일치단결해

살인자를 규탄했다. 그런데 천안함에서는 제1 야당과 반(反)
이명박
시민세력이 살인자의 지목과 규탄을 거부했다. 

그들은 지금도 북한을 옹호하고 남한 정권을 공격한다.

한국 정신사(精神史)에 남을 충격이다.그해 6월 29일 민주당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규탄하는 국회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6·29가 어떤 날인가. 민주화 선언으로 국가의 숨통을 열었던 날 아닌가.

그런 역사적인 날에 민주화 후예라는 이들이 국가의 숨통을 막았다. 

나는 ‘민주당의 맹북주의 6·29’라고 썼다.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도

국가안보만큼은 협력했던 민주당 선조들의 개탄을 모아,

한국어가 허용하는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민주당의 6·29’를 규탄한다.”  

그해 7월 나는 ‘천안함의 어머니들이여’라고 썼다.

“대통령은 약하고, 거대 여당은 정신적 발육장애에 걸려 있고,

제1 야당은 남과 북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군은 위축돼 있고 반(反)정부 시민세력은 군을 공격하고 북한을

방어한다. 이런 나라에서 누가 김정일 정권의

사죄를 받아낼 것인가. 

나는 어머니들에게 호소했다. 76~83년 아르헨티나 군부정권의

폭정은 ‘추악한 전쟁’으로 불린다. 1만2000여 명이

납치·살해·실종됐다. 77년부터 그들의 어머니 수십 명이

아들을 돌려달라며 ‘5월광장’을 돌았다. 

나는 천안함의 어머니들도 서울광장을 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8개월 후 이번엔 연평도가 당했다. F-15K는

대당 1000억원이나 하는 최고급 무기다. 200㎞ 떨어진 곳에서 

SLAM-ER 유도탄으로 목표물을 때린다. 섬마을이 불바다가

됐는데 이 정권은 그런 전폭기를 하늘에 띄워놓고도

북한을 폭격하지 못했다. 

나는 ‘F-15K가 울고 있다’고 적었다. “F-15K는 국민이 피와 땀과 눈물로

사준 국민의 무기다. 바로 연평도 사태 같은 때에 쓰라고 사준 무기다.

그런데 군은 그런 무기를 비겁과 패배주의란 쇠줄에 묶어놓았다.

흔히 주먹이 운다고 한다. 유약한 지휘관에게 화가 나고

천안함 46인과 연평도 4인이 불쌍해

F-15K가 울고 있다.”  

『대한민국의 비명』을 내면서 나는 묻는다. 국가의 실존은

누가 지키는가. 정치인과 운동가의 세 치 혀인가.

아니면 한주호 준위의 거친 호흡과

아덴만 작전요원의 자동소총인가. 

나는 한 준위와 UDT 대원들에게 이 책을 바쳤다.

나는 많은 이가 이 책을 배우자·자녀·친지에게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공동체 실존의 문제를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공동체의 비명이 가족의 울음보다 작게 들릴 때

이 책을 펴보면 좋겠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     옮     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