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영희 글모음

어느 여름밤



어느 여름밤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도 중순, 무척이나 더웠던 하루였다

날마다 더위는 위력을 더해가고 올해 따라 가뭄으로 야단이다.

땀으로 젖은 몸을 시원히 씻고 페디오에 나가 쏘파에 누우니 어두워가는 밤하늘이 눈앞에 펼쳐진다. 기분이 무척 상쾌하다. 어느 계절에서도 느낄수 없어던 여름밤의시원함이 이런것인가 새삼 느껴진다.

녹색으로 완전히 물들어 버린 나무들을 쳐다보니 내 인생도 이쯤 와 있겠지 하는 생각이든다. 어디선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은은히 들려온다. 자기 둥지로 날아가려다 잠시 쉬면서 하루 일을 서로 이야기 하는가 보다. 평소에는 별로 새 소리에 귀를 귀울이지 않던 내가 오늘따라 왠지 저 새들의 지저귐에 예민해진다. 기분이 착 가라앉아 마음의 여유가 생긴 때문일까?

15년전 인가 어느 하루 어린 새와 지냈던 저녁 시간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아마 우리 가족이 이민을 온 첫 해 였던것 같다.

아이들은 두 살, 세살의 어린나이, 우리부부는 아이들을 서로 돌봐야 했기 때문에 Shift를 바꾸어 직장을 다니며 숨박꼭질 가정 생활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모처럼의 휴일인가 온 가족이 함께 지낸 초저녁, 정원으로 통하는 열려진 뒷문으로 갑자기 새 한 마리가 우리 아파트에 날아 들어왔다.

우리 가족은 모두 신기하여 그 새를 잡아서 세탁 바구니에 덥어 놓고 물과 모이를 주면서 돌봐 주었다. 아이들은 얼마를 새 옆에 앉아서 들여다 보고 마냥 좋아 하더니 큰 녀석이 갑자기 내게 달려와 “엄마! 새가 왜 우는것 같아?” 한다. 그 소리를 듣고 나도 새 곁으로 가 보았다.

정말 날개가 축 늘어진 어린새가 두려움으로 가득차 아무것도 먹을려고 하질 않는다.

“아마 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러겠지”하고 대답해 주었더니 금방 그 어린 가슴에 동정심이 생기는지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해 지면서 “그럼 우리 이 새를 자기 엄마에게 보내 주자”고 한다. 좋은 기회라 싶어서 난 새를 가만히 손 안에 넣어 창밖으로 날려 보내 주었다.

푸드득 소릴 내며 검은 먼 창공으로 날아가는 새를 보고 우리 모두는 안도의 숨을 같이 쉬었다. “이젠 자기 엄마한테 찿아 갔겠지?” 하면서 몇 번이고 되 묻다가 잠든 어린것들의 천진한 모습을 들여다 보면서 미소 지었던 기억이 새롭다.

엄마품을 더나면 큰일 나는줄 알던 그 어린 아이들이 이젠 다 성장하여 곧 대학으로 떠난다. 세월은 참 빠르구나 생각 하면서 난 그동안 무엇을 하면서 지냈다 하고 돌이켜 본다.

건강하고 큰 탈없이 커 준 아이들이 고맙고, 항상 사랑으로 감사주고 한번도 실망을 안겨 주지 않은 그이의 진실과 성실함에 더욱 고마움이 느껴진다.

내가 좀 더 노력하여 우리 가정을 천국의 모습으로 가꾸어 가야지 하는 생각을 늘 하지만 그래도 왠지 어딘가 빈곳이 있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젠 나와 우리 가정만을 가꾸던 내 손길과 불빛의 둘레를 더 넓혀 내 이웃을 사랑하고 비추는데도 좀 더 신경을 써 보아야지 생각하니 금새 마음이 환해 지는것 같다.

그 빈 곳을 같이 채워가는 생활이야 말로 진정한 삶의 행복과 보람을 찿을수 있는 생활이 아닐까?

“밖이 더 시원한가?” 하며 그이가 밤의 정막을 깨고 나와 내 옆에 않는다.

멀리 별들은 우리를 향해 속삭이고 찬란한 여름밤에 적막은 점점 더 깊어만 가는데.

1988년 7월

'이영희 글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지  (1) 2010.08.21
하얀 봉투  (3) 2010.08.21
10주년에 부치는 글  (1) 201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