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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영의 글과 발언대

과연 통일은 대박인가?

과연 통일은 대박인가?                                    

                                     이 오 영

                                 ●통일교육위원                                    

                                 ●미주희망포럼

                                 ●전 미주 한인회 총연합회장

 

* 아래글은 1/2/14:필라 한국일보에 기고 됨

 

1. 서언

 

한 반도는 1945년 일제로부터 광복과 함께 외세에 의한 분단을 시작으로 1948년 남북이 각각 정부 수립으로 분단의 고착이 시작 되자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의 적화 양욕에 의한 남침으로 국군 및 유엔군의 전사 및 사망 178,569명 부상 555,022명, 포로 및 실종 42,769명등 776,360명 그리고 민간인 인명피해 학살 사망, 부상 및 납치 행방불명 등 총 990,968명의 막대한 희생자를 낸 후에 1953년7월 27일 외세에 의해 정전협정 체결된 이후 현재의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7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민족이 완전 이질화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은 민족의 염원 이면서 동시에 통일은 과연 우리민족에게 필요한 것인가 반문해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론리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국민의 통일 인식은 무엇이며 현제까지 남과 북이 통일을 위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상당수가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6.25의 불법 남침에 대한 거부 감정에서 보다는 통일 비용과 사회 혼란의 우려에서라고 분석된다.

 

따라서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 통일을 위해서는 분단의 원인과 피해 그리고 남•북한의 기본적인 통일 정책을 바로 알고 통일은 국민감성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 대치 상황이라는 냉혹한 현실의 인식하에 통일의 필요성을 함께 공유하여 국내외적인 국민적 국제적 공감대가(재외동포 포함) 폭넓게 형성 확산시켜 언제라도 통일에 대비할 수 있는 “통일 기반 조성”을 함께 조성해 나가자는 뜻으로 통일부 제공 자료를 근거로 이 글을 기술 하고자 한다.

 

2. 통일의 의미 및 방안

 

통일이란 분단된 한반도가 지리적(물리적으로 하나), 정치적(체제로 단일화), 경제적(경제권 통합 및 인•물적 자원 공유) 사회 및 문화적(동질성 회복) 측면에서 서로 다른 두 체제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반 위에 국토 분단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는 새로운 민족 공동체를 건설 하는 과정의 완성으로 통일 선진 국가로 도약 할 수 있는 민족의 염원을 이루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통일은 분단된 국토를 하나로 한다는 물리적 결합을 넘어 제도와 민족이 하나로 거듭 나는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것으로, 그 방안은 하나의 열린 민족 공동체 속에서 민족 구성원 모두의 자유와 인권, 행복이 보장 되는 민주 국가 건설을 전제하는 것임으로 통일에 이르는 과정이나 방향도 전쟁이나 폭력에 의한 방법을 피하고 민주 적이고 평화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분단이후 남북이 어떤 통일 정책을 추진 해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3. 남•북의 통일 정책 분석

 

요약하면 남한은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바탕으로 평화정착과 민주 방식에 의한 통일정책을 일관되게 추진 계승 발전시켜 왔고, 북한은 “민주 기지 론”에 근거하여 “혁명과 폭력에 의한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역대 정권별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이승만 정부(제1공화국/1948년12월 12일)- 유엔감시 하에 남북한지역 자유총선거론

김일성 정권- 민주기지론(민족 해방론)에 의한 무력적화통일

 

2)장면(민주당) 정부(제2공화국/1960년)- 유엔 감시 하에 남북 자유 총선거,

김일성 정권- 남북 연방제(1960)

 

3)박정희 정부(제3공화국/1966)- 선 건설, 후 통일

김일성 정권- 남북 연방제(1960)

 

*(제4공화국/1973.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 (1974년)- 선 평화 후 통일,

김일성 정권- 고려연방제(1973)-조국 통일 5대 강령

 

4)전두환 정부(제5공화국/1982)- 민족 화합과 민주통일 방안,

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1988)

김일성 정권-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1980)

 

5)노태우 정부(제6공화국/1989)-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

김일성 정권-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

 

6)김영삼 정부(1994.8)- 민족공동체통일 방안(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

김일성/김정일 정권- 1민족1국가2체제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1991)/민족대단결론

 

7)김대중 정부(1998.2)- 민족공동체통일 방안 계승/ 한민족 공동체의 바탕위에 대북포용정책( 햇볕정책)

김정일 정권- 낮은단계의연방제(2000)/민족 공존론(2체제2정부 기본정책은 변하지 않음)

 

8)노무현 정부(2003.2)- 민족공동체통일 방안 계승/ 한민족 공동체의 바탕위에 평화번영 정책,

김정일- 전과동

 

9)이명박 정부(2008)- 민족 통일 방안 계승/ 비핵·개방 3000,

김정일- 전과동

 

10)박근혜 현 정부(2013년 현 정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3대 세습정권으로 장성택 숙청 처형이후 집권 체제 강화속에 내남 강경책이 예상.

 

위에서 제시한바와 같이 대한민국 정부는 시대적 안보상황과 당시 경제상황 특성에 따라 통일 정책 추진에 약간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어 국민들을 헷갈리게 한 면도 있으나 “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란 공통된 통일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통일 방안의 Key는 “민족 공동체”라는 기본 틀 안에 남북한이 화해협력단계와 남북 연합 단계를 거쳐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 국가 수립으로 무력이나 폭력이 아니라 평화 적인 방법으로 점진적인평화 공존의 단계를 걸쳐 국민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는 민주 국가의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통일 정책을 계승 발전시켜온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에서 추진한 햇볕정책 과 노무현 정권에서 추진한 평화 번영정책은 통일 정책의 기본 취지는 역대정권과 다를 바 없으나 추진 과정에서 북한과의 호혜원칙을 무시한 일방적으로 북한에게 혜택을 베푸는 저자세의 정책추진으로 북한의 국력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 오늘날 북한이 핵무기개발로 세계를 위협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과오를 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김일성이 1945년 12월 17일 북조선을 통일된 민주 국가를 위한 민주 기지로 전변시킬 것“을 선언한 이래 3대 세습되는 정권하에서 “민주 기지론 확산”이란 기본 정책을 바탕에 깔고 평화통일제안과 남조선 혁명이란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 대화를 위하여 적화통일전략을 숨기고 민족대단결 또는 공조 론을 내세워 남북 연방제, 고려민주연방제, 낮은 단계의 연방제등으로 이어져 오면서 겉으로는 화해 협력이란 위장 전술을 구가 하여 남북 정상 또는 고위층 대화와 경제 협력에 이르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지속적인 도발 또는 일방적인 약속 파기 등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로 “대화-화해-대치-적대”의 악순환으로 몰고 가는 원인을 제공하여 오늘날 남북한은 또 다시 냉각기로 회귀 한 상태이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신뢰 프로세스” 통일 방안을 제시했다.

지금 까지 북한이 취해온 국제규범 상식에도 어긋나는 억지와 무원칙으로 인해 남북 간의 깊어진 불신의 고리가 심화 된 사실을 교훈으로 이불신의 고리를 단절함이 급선무라 보고 이를 위해 남북이 진정성 있는 대화로 작은 것부터 신뢰를 쌓아 통일 기반을 조성하자는 강력한 의지를 분명히 나타낸 것이다.

 

통일은 사회과학적 측면서 보면 갈등의 해소이다.

북한이 갈등의 요인을 계속 제공하고 있는 한 한반도의 평화 통일로의 접근은 요원한 것으로

평화공존은 남북한양국의 진정성 있는 협상과 의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성은 협상대상자의 최소한의 도덕적 기본 예의와 국제 사회의 규범을 준수 하는 초보적인 신뢰가 내포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일방적인 무례로 폐쇄위기에 처했던 개성공단이 우여 곡절 끝에 재개될 수 있었던 것은 박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정책을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원칙과 열린 대화의 문을 적절히 구사하여 이룬 하나의 성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뢰 프로세스는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신뢰 프로세스는 남북 간의 관계는 물론 더불어 사는 국제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4. 통일기반 구축은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에서

 

독일의 분단은 우리와 같이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룬 아픔을 격고 정전 상황에서 서로 대치하고 이 있는 민족의 분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와 국민적 감정이 서로 다르겠지만, 이들의 통일은 동서독간의 신뢰의 구축에 바탕을 둔 것이었으며,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의 탁월한 Leadership위에 여야모두 통일 정책만은 당리당략을 초월 범국가 차원에서 지지해 주고 국민의 공감대형성에 힘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도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아래 평화적인 방법으로 공영공존의 기조위에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발전 시켜 “1체제 1국가”라는 완전 통일을 이루기까지 통일의 주체가 국민이라는 인식하에 국민 공감대 형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반도 내의 국민 뿐 아니라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720만 재외 동포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통일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은 물론 모든 국민스스로가 통일 앞에는 감성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남북한의 현실과 통일 정책을 바로 알고, 정치적 논리를 앞세워 전략적으로 적에게 유리한 언행도 서슴치 않는 “비판자의 자세에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주체”라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국가가 통일 정책 수립 과정에서 정치인들이 대안을 갖고 소신 있는 의견제시와 활발한 논의는 필요하나 일단 결정된 국가의 통일 정책은 당리당략을 초월 하여 한마음으로 정부의 통일 정책에 힘을 실어 주겠다는 의식과 지혜가 필요하며 이런 풍토에서만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의 정치권에서는 당리당략에 치우쳐 정부의 통일 추진 정책마저도 차기 집권을 위한 전략적 차원으로 접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아울러 오랜 분단으로 이질화된 민족성과 북한의 집요한 공작으로 남남갈등이 심화 되어 국가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리고 있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어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18대 총선에서 야권연합이란 우산아래 RO 와 같은 반국가 조직이 이른바 민주 국가의 국민의 선량의 전당이라 일컫는 국회까지 침투하여 반국가 반국민 활동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 하고 과연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남북이 아직 정전 상태에서 서로 첨예하게 대치해 있는 한반도의 현실상황에서 국가안보에 얼마나 큰 구멍이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RO는 차후 재판결과 그 실체가 들어 나겠지만 지금까지 들어난 사실만으로도 북한의 기본 통일 전략(김일성 제창: 민주기지론 확대)에 입각하여 활동하던 지하조직임을 직감케 한다.

이 기회에 우리는 북한의 통일 전략이 남한 내에 교두보를 만들어 조직력을 확산하면서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국론을 분열시켜 결정적인 순간에 봉기하여 남한을 혁명과 폭력수단으로 정부를 전복시켜 북한의 적화 통일을 돕겠다는 기본 전략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5. 남한의 통일 협상 노력 및 결과

 

남•북은 6.25전쟁이후 냉전을 계속해 오다가 1970년대에 남북 대화 시대를 열고 40년이 지나는 동안 한때는 통일 기반이 이루어 지는듯한 국민적 기대가 있었으나 또다시 초긴장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남북한은 앞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도발-위기-타협-보상-도발”의 긴장과 대립의 악순환이었다. 그 원인은 모두가 북한의 억지나 도발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협상 내용과 과정을 살펴본다.

 

1) 1970.8.15 박정희 대통령은 평화 통일 구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선언했다.

 

*긴장 완화

*북한의 무력적화통일, 폭력혁명에 의한 대한민국 정부 전복 기도 포기

*남북사이 인위적 장벽 단계적 제거용의

*북한의 유엔참석 불 반대

*남북한 선의의 경쟁다짐

 

2) 1972년 7.4 남북한은 남북 적십자 회담과 병행하여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 기조로

7.4 공동성명은 '남북의 통일은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으로 이뤄야한다“는 내용의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 되었다.

 

3) 1973, 6.23 박정희 대통령은 평화 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선언으로 평화통일의 강력한 의지를 표방하여 통일 환경 개선을 위한 개방적이고 실리적인 통일외교정책을 천명하는 7개항을 발표했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우리민족의 지상 과업으로 규정

*한반도 평화 유지의 필요성 및 남북한 내정 불간섭 및 불침략

*남북 공동 성명에 입각한 남북대화를 위한 지속 노력

*북한 국제기구 참여 불 반대

*모든 국가의 상호 문호 개방

*남북 유엔 동시가입 불 반대

*평화 선린에 입각한 대외 정책 및 우방국들과의 유대 관계 공고화 재천명하는 등

** 남북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북한은 남한의 일방적인 6.3선언을 트집잡아 1973년 8월 남북 조절위원회를 일방적으로 중단함으로서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북한에 당한 것이다.

 

4) 1974년 1월 18일-박정희 대통령, 북한에 남북 불가침협정체결 제안

 

5)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 다음과 같은 평화통일 3대 기본 원칙 제안.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남북 간의 대화와 교류

*남북 총선거실시-남북 간의 신뢰조성과 동질화

*“유엔 감시하”를 “공정한 선거관리와 감시”로 변화

 

6) 1982년 1월 22일 전두환 대통령, 국정 연설에서 “민족 화합 민주통일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 했다.

 

*평화통일 원칙 재확인 “민족, 민주, 자유, 복지” 목표

*분단의 현실을 인정 하고-통일의 완성

*민족 화합선행

*남북 대표협의로 통일헌법 및 통일 민주 국가 완성

 

이의 후속 조치로 서울평양 고속도로건설, 이산가족의 우편 교류 및 상봉실현 등 20개항의 실현을 함께 추진하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7) 1988년 7.7 선언-노태우대통령 새로운 남북 관계정립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다음과 같은 “민족. 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하고 다음해인 1989년 9월 11일 국회에서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선언하고, 여기서 통일의 원칙을 “자주, 평화, 민주”를 제시하여 “자유, 인권, 행복”이 보장 되는 민주국가를 이룩하되 과도적 통일체제인 “남북연합”을 거쳐 통일헌법이 정하는 총선거를 실시 “완전한 통일 국가”를 수립하자는데 있다.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서는

 

* 남북동포의 상호교류 및 해외 동포의 남북 자유왕래 개방

* 이산가족 생사, 주소확인, 서신왕래, 상호방문 적극 주선

* 남북한 교역 및 문호개방

*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및 비군사 물자에 대한 우방국과 북한 간 교역용인

* 남북한 소모적 경쟁 및 대결외교 종결, 국제무대 상호 협력

* 북한과 미국 및 일본, 한국과 소련 및 중국과의 관계개선

 

이러한 노력은 제1차 남북 고위급 회담이 1990년 9월 서울에서 개최, 1992년 2월 평양에서 제 6차 회담을 통하여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 및 “분과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가 발효. 1992년 5월 9일 제 7차 8차 회담에서 각종 분야별 부속 합의서를 채택 발효시켰으나 이 또한 북한의 일방적 중단에 의해 남북한의 합의는 물거품이 되었다.

 

8)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지난 정부의통일 방안을 계승 발전 보완하여 1994년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통일 방안을 제시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김일성과 남북 정상회담을 약속했으나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무산 되고 북한은 김정일로 그 정권이 세습되기에 이른다. 북한은 김영삼 대통령이 김일성 사망에 대한 성의 있는 조의를 표 하지 않았다고 비방을 높이며 긴장의 수위를 높여 갔다.

 

9) 김대중 정부-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기본 틀 안에 북한의 김정은과 남북 관계개선을 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대북 화해 협력정책을 추진하되 우리가 먼저 남북 관계개선의 전향적인 자세를 보임으로서 북한 스스로 변화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이른 바 “햇볕정책”을 표방하고 북한을 도와주어 변화시키겠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우리의 선의에 북한의 선의가 이어져 선순환적인 남북 관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개최 하여 6.15남북 공동선언 채택(남북관계 개선 방향과 당면과제 5개항을 담음)등 가시적인 효과를 거두어 “노벨평화상” 까지 받았으나, 북은 2002년 10월 제 2차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서 한반도뿐 아니라 국제 사회의 긴장을 고조 시켰다.

결국 김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북한에 퍼주어 핵무기를 개발케 했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10) 2003년 10월 4일 노무현 정부- “평화 번영 정책”(한반도 평화 증진과 남북한 공동 번영실현 및 동북아 번영)선언 으로 * 대화로 문제 해결 * 상호 신뢰와 호혜주의 * 남북 당사자 원칙에 의한 국제 협력 * 국민과 함께 하는 정책 추진 원칙 남북한 공동 사업 추진을 합의 했으나 북의 핵문제와 북한의 변화도 우리 국민 수준에 미치지 못함으로서 성과 없이 끝났다.

노무현정권의 북한에 호의적인 태도로 일관 하고 대통령임기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 북한에 김정일을 방문,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통령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저자세와 경솔한 언행에 국민을 실망케 했으며 국토 해상 방어선인 NLL을 포기하는 듯한 망언으로 국위를 손상시키고 남남갈등의 골을 심화 되시키는 시비를 불러일으켜 제 18대 대선 정국을 뒤흔들게 했다.

 

11) 2008년 이명박 정부- 남북관계정립 및 실질적 관계 발전 추진관점에서 “남북한 주민의 행복 한 삶과 통일 기반 마련을 궁극적 목표로 * 실용과 상생 * 원칙과 유연 * 국민적 합의 기초 정책 * 남북 및 국제 협력의 조화 추진“상생. 공영의 대북 정책”으로 “비핵개방 3000”을 선언하고 북한에 대화를 촉구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2) 2013년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남북한이 정전 협정으로 분단된 이래 북한의 계속적인 도발과 억지 및 상식이하의 행동으로 “남북 기본 합의서”가 깨지고 남북 간에 신뢰성은 좀처럼 이루어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신조 일당 청와대 급습사건이래 남북이 대화의 국면에 젖어든 이후에도 동해안 군함 침투, 아웅산 폭파사건, 금강산 남한 관광객 피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공격, 개성공단 폐쇄(후에 정상가동)등 북한의 일방적인 도발로 한반도에는 모처럼의 화해 무드가 깨지고 불안이 증폭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2006년 10월, 2009년 5월, 2013년 2월 계속되는 핵실험으로 우리 안보의 중대 한 위협이자 국제적 비확산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가중되면서 남북은 심각한 대치국면으로 빠져 들고 있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는 비핵화와 신뢰 회복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 포기를 현실화 시키는 것은 북한의 억지를 쓰고 있는 한 참으로 힘든 문제로 이는 북이 스스로 핵의 필요성이 없음을 인식 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기초로 과거와 다른 차원의 현실적인 접근 방법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북에게 어떠한 도발에도 강력한 대응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 주어야 하며 반면에 국제적 규범과 관행을 준수할 경우 국제 사회의 혜택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어 지속 가능한 “평화 구축”의 분위기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이미 지나친 원칙 주의는 남북 대치를 지속시키고, 원칙 없는 관용은 악순환을 지속 시킬 뿐이란 경험을 했다. 따라서 양자의 균형 있는 정책을 구가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과거의 포용정책도, 원칙중심의 대북정책도 모두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 문제의식에서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하여 과거의 대북정책의 장점을 통합적으로 분석 접근 하여 신뢰형성을 하자는 의지의 표시라 생각 된다.

 

6. 통일은 대박인가?

 

지금 남한의 이산가족은 9만여 가족으로 1988년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래 20년간 상봉자 수는 13만 명 면회 신청자중 2만 여명에 그쳤으며, 신청자는 76%가 70대 이상의 고령자로, 신청후 면회를 기다리다가 4만 명은 이미 유명을 달리 하여 분단의 고통을 실감 하고 있는 형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북한은 이러한 최소한의 인도주의 협상까지도 정치 경제 군사적 목적과 연계하여 흥정 하고 있는 실정이다.

분단의 고착은 위와 같이 이산가족의 고통 뿐 아니라 양국 모두 막대한 국방비로 국력 낭비와 자원의 분할사용, 북한의 도발과 억지로 적대와 대립이 지속되어 같은 민족이 남북으로 이질화 되고 경제격차 이념의 차 등으로 민족의 정체성마저 훼손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분단하의 한반도의 현실이기도 하다.

 

박근혜대통령은 갑오년을 맞이하는 1월 초 취임 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통일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소신을 피력하면서 이는 비단 한반도에 한한 것이 아니라 동북아 주변국가 모두에게도 대박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접근 방법으로 “한반도의 신뢰 프로세스”를 통하여 남북한이 신뢰를 쌓아 통일기반을 구축하여 완전 한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일부에서는 통일 비용을 걱정하여 통일 꺼리는 층이 있음을 시인하고 통일은 비용보다는 통일이후 얻는 게 많은 것으로 분명 대박이다라고 선언적으로 대답한 것이다.

필자도 이에 적극 동의하는 것이다. 대통령께서도 이러한 선언을 하기 까지는 전문 기구를 통해 충분 한 연구 끝에 내린 결론 이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7. 통일이 대박인 이유

통일은 분단 조국을 하나로 국토의 단일화 의미를 넘어서 민족의 통일, 정치체제, 제도, 경제, 사회 등을 완전히 하나로 완성하는데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정서는 통일을 이루어 남북한이 자유로이 왕래 할 수 있는 당위성은 인정하나 통일로 얻는 혜택 보다는 더 큰 비용과 혼란을 우려하여 통일을 선 듯 동의하지 못하는 일부 국민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통일은 우리 민족에게 다음과 같은 혜택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업이기도 하다.

 

1) 훼손된 민족정체성과 민족동일성을 회복이 가능하며.

 

2) 항구적인 평화 보장으로 인한 민족 간의 이념 대립을 종결하여 사회 통합과 국론의 결집력 이 세계열강과 경쟁력을 강화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며.

 

3) 남북 구성원 모두에게 자유와 인권 과 행복한 삶을 보장하게 되며, 특히 탈북자에 대한 고통의 해소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4) 남한의 우수한 전문성과 북한의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을 활용하면 세계수준의 경제력을 확 보할 수 있게 된다고 본다.

 

5) 남북 모두 국방비 절감으로 국민 생활 향상에 기여하는 자금 마련이 가능하다.

 

6) 하나로 통일된 남북의 맨 파워는 선진 국가로 도약하는 기본 요소가 된다.

 

통일 후 남북한 인구 1억이란 맨 파워를 바탕으로 국력이 모아 진다면 우리나라는 G-10 에서 G-5 (세계 5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통일은 위와 같이 분단에 따른 유무형의 비용을 소멸시키고 새로운 이익을 창출함으로 국가, 사회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질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차원에서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에 의해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사회적 혼란, 경제적 비용, 정치적 부담 등은 자연 해결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대박이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이다. 끝


2014/1/27